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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해야 비로소 시작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속 30km로 협곡을 달리는 열차 안에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2013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코레일의 백두대간 협곡열차, 일명 V트레인은 이동 시간 자체를 여행으로 만드는 국내 유일의 관광열차입니다. 직접 알아보기 전까지는 그냥 느린 기차겠거니 했는데, 알면 알수록 꽤 치밀하게 설계된 노선이었습니다.
운행정보 — 알려진 것과 실제가 다른 부분들
일반적으로 V트레인은 그냥 예쁜 풍경 열차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제가 직접 시간표를 뜯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전략적으로 탈 수 있는 노선이었습니다.
V트레인의 정식 명칭은 백두대간 협곡열차입니다. 영어로 계곡을 뜻하는 'Valley'의 앞 글자를 따서 V트레인이라 불립니다. 쉽게 말해 백두대간의 깊은 골짜기, 즉 협곡(峽谷) 사이를 달리는 열차라는 뜻인데, 실제로 달려보면 산 양쪽이 열차를 감싸는 느낌이 꽤 실감납니다.
운행 구간은 영주역에서 철암역까지 영동선(嶺東線) 일부 구간입니다. 영동선이란 경북 영주와 강원 강릉을 잇는 철도 노선으로, V트레인은 그 중 분천역~양원역~승부역~철암역 구간에서 가장 극적인 협곡 풍경을 보여줍니다. 이 구간이 핵심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전체 시간표 구조까지 파악한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요.
하루 두 편 운행이라는 점이 가장 큰 변수입니다. 영주역 08시 30분 출발 편과 분천역 14시 25분 출발 편, 이 두 편이 전부입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예상 밖의 난관이었습니다. 저는 부산 부전역에서 KTX 이음 704편(05시 54분 출발)을 타고 영주역에 08시 08분에 도착하는 일정을 잡았는데, 결국 첫 편을 놓치고 분천역 14시 25분 편으로 대신 탔습니다. 접근 방법은 두 가지로 정리됩니다.
- 서울 청량리역 출발: KTX 이음 703편(06시 27분) → 영주역 08시 15분 도착 → 영주역 08시 30분 V트레인 바로 탑승 가능
- 부산 부전역 출발: KTX 이음 704편(05시 54분) → 영주역 08시 08분 도착 → 동일하게 08시 30분 V트레인 연결 가능 (단, 여유 시간 22분으로 매우 촉박)
- 위 두 편을 놓쳤다면: 영주역에서 무궁화호로 분천역까지 이동(약 1시간) → 분천역 14시 25분 V트레인 탑승
- 좌석 선택 팁: 분천역 방면에서 철암역으로 향할 때는 1호차(후미 차량)를 선택하면 열차가 지나온 협곡 전경을 통창으로 볼 수 있음
참고로 부전~영주 구간 KTX 이음은 2024년 12월 개통된 노선입니다(출처: 코레일 공식 홈페이지). 이전에는 부산에서 V트레인을 타려면 환승이 복잡했는데, 개통 이후 접근성이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주말·공휴일 승차권은 조기 매진되는 경우가 많으니 코레일 앱으로 사전 예약은 필수입니다.
분천역과 V트레인 — 느린 열차가 살린 것들
분천역(汾川驛)은 한때 폐역 위기까지 몰렸던 간이역입니다. 1960~70년대 석탄 산업이 호황이던 시절에는 탄광 물자의 주요 거점역으로 사람이 북적였지만, 90년대 이후 석탄 산업이 쇠락하면서 이용객이 급감했습니다. 그러다 2013년 V트레인 개통과 함께 산타마을로 재단장되면서 지금은 기차 여행객이 꾸준히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사례가 단순한 관광 개발 성공 스토리로만 읽히지 않더라고요. 폐역 직전의 역이 열차 하나로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분천역이 산타마을이 된 데는 한국-스위스 수교 50주년(2013년)이 계기였습니다. 이를 기념해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분천역이 자매결연을 맺었고, 역 주변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미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쉽게 말해 자매결연(姉妹結緣)이란 두 지역이나 기관이 교류 협력 관계를 공식적으로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붕이 모두 빨간색으로 통일된 마을 풍경이 그 흔적입니다.
분천역 플랫폼 옆에는 산타우체국이 있는데, 이곳에서 엽서를 부치면 다음 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도착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단순한 장치가 생각보다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여행지에서 1년 뒤의 자신에게 엽서를 보낸다는 개념 자체가 이동 수단으로서의 기차가 아니라 경험으로서의 기차여행을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열차 안으로 들어서면 객실 전면을 채우는 통창(通窓)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통창이란 벽면 대부분을 유리창으로 처리해 개방감을 극대화한 창문 구조를 말합니다. 각 창문은 양쪽 홀더를 잡고 직접 올리거나 내릴 수 있어 바람도 맞을 수 있습니다. 시속 30km라는 저속 운행도 단순히 느린 게 아니라 협곡 지형에서 안전하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속도입니다.
V트레인이 정차하는 양원역(兩院驛)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곳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역이자 최초의 민자역(民資驛)으로, 마을 주민들이 자비를 들여 직접 만든 기차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자역이란 국가가 아닌 민간이 자금을 투자해 건설한 역을 의미하는데, 기차 외에는 외부로 나갈 교통수단이 없던 마을 사람들이 직접 역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오지(奧地)의 현실을 실감하게 합니다. 영화 <기적>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정차 시간이 약 10분으로 짧아서 주변을 충분히 둘러보기에는 아쉬운 편이었는데, 이 점은 솔직히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승부역(勝負驛)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차린 미니 장터가 열립니다.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는 말이 유명한 이 역 역시 사방이 험한 산세로 둘러싸인 오지입니다. 이 문구는 그만큼 협곡이 깊어 하늘조차 좁게 보인다는 뜻으로, V트레인 전 구간에서 오지의 깊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실감하게 해주는 곳이었습니다. 코레일 관광개발에 따르면 V트레인은 운행 10년이 넘은 현재도 주말 예매율이 높게 유지되는 대표 관광열차입니다(출처: 코레일 레츠코레일).
자주 묻는 질문
Q. V트레인 예매는 얼마나 일찍 해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한 달 전 예매를 권장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주말이나 단풍철·겨울 시즌에는 그보다 훨씬 일찍 매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코레일 앱에서 예매 시작일에 맞춰 바로 예약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평일 출발 편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Q. 분천역 당일치기로 부산에서 다녀올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부전역 05시 54분 KTX 이음을 타면 영주역에 08시 08분 도착, 이후 무궁화호로 분천역까지 약 1시간이면 닿습니다. 저는 이 방법으로 당일치기로 다녀왔는데, 분천역에서 V트레인 출발까지 약 2시간 40분의 여유가 생겨 산타마을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복귀는 철암역에서 무궁화호로 영주역 경유 부전역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Q. V트레인 탈 때 어느 좌석이 가장 좋은가요?
A. 분천역·영주역 출발로 철암역 방면으로 향할 때는 1호차(후미 차량)를 선택하면 지나온 협곡 전경이 통창으로 열립니다. 반대 방향인 철암역 출발 시에는 이론상 3호차가 후미이지만, 3호차 뒤에 발전차가 붙어 있어 후미 전경 감상이 어렵습니다. 가을 단풍 시즌에는 창문을 직접 내려 바람을 맞으며 보는 풍경이 특히 좋다고 합니다.
Q. 아이와 함께 방문해도 괜찮은가요?
A. 분천역 산타마을은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에 오히려 더 잘 맞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산타 조형물과 포토존이 곳곳에 있고, 산타우체국에서 내년 크리스마스에 도착하는 엽서를 직접 써볼 수 있어 아이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V트레인은 약 1시간 동안 열차 안에서 창밖을 감상하는 여행이라 어린 아이보다는 초등학생 이상에게 더 맞을 수 있습니다.
결론
빨리 가는 것이 좋은 여행이라는 생각을 오래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자동차를 택했고, 기차는 환승이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V트레인을 직접 알아보고 나서는 그 판단이 조건부로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지가 아니라 이동 과정 자체가 목적인 여행이라면, 시속 30km는 단점이 아니라 설계된 속도입니다.
한 가지 솔직히 아쉬웠던 점은 양원역과 승부역의 정차 시간이 각 10분으로 짧아, 역의 역사나 주변 풍경을 여유 있게 즐기기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하루 두 편 운행이라는 구조적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이 부분은 방문 전에 미리 인지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을 단풍이나 겨울 설경 시즌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는 첫 편인 영주역 08시 30분 출발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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