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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동차에만 의존하게 됩니다. 짐도 많고, 시간표도 맞춰야 하고, 갑자기 칭얼대면 바로 세울 수도 없으니까요. 저도 몇 년째 기차 여행은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3년 만에 부활한 정선아리랑열차 소식을 접하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열차를 타는 것 자체가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번에 제대로 와 닿았습니다.
3년 만에 돌아온 정선아리랑열차, 달라진 점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관광열차라고 하면 좌석이 좁고 시설이 낡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새롭게 부활한 정선아리랑열차는 그 편견을 꽤 많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정선아리랑열차는 2022년 수해와 낙석으로 운행이 전면 중단되었다가 올해 완전히 리뉴얼되어 재운행을 시작했습니다. 기존에는 청량리역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제천역을 출발지로 합니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청량리역에서 ITX-마음 열차를 타고 제천역에서 환승하는 방식입니다. 코레일 앱에서 제천을 출발지로 설정하면 예매할 수 있고, 종점인 아우라지역까지 요금은 10,200원입니다.
열차 내부 구조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번 리뉴얼의 가장 큰 특징은 천장 가까이까지 이어지는 대형 창문입니다. 여기서 파노라마 창(panoramic window)이란 일반 객차보다 훨씬 넓게 설계된 창문 구조로, 좌석에 앉은 채로 산과 강을 위아래로 넓게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봤을 때 이 차이는 사진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울 만큼 체감이 달랐습니다.
객차 구성도 용도에 따라 나뉩니다.
- 1·4호차: 일반 지정석 + 자유석 2개. 스위블 체어(회전 의자) 적용으로 마주 보고 앉기 가능
- 2호차: 식당칸 형태의 담소석 + 자전거 전용석. 자전거 8대 적재 가능
- 3호차: 휠체어석 포함 일반 객차
- 1·4호차 끝 칸: 관람석(전망 객차). 벤치에 앉아 자유롭게 경치를 즐길 수 있음
자전거 거치대는 2호차 자전거 전용석을 예매한 경우에만 이용 가능합니다. 전 좌석 아래에는 220V 콘센트가 있고, 냉방도 충분했습니다. 제천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약 2시간 30분이 걸리는데, 그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건 이 내부 구조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우라지, 그냥 강가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아우라지역에 도착하면 기차 여행이 끝나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종점 역 앞에 레일바이크 타는 곳이 있는 정도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볼거리와 이야기가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아우라지'라는 지명은 두 줄기의 강이 한곳에서 합류한다는 뜻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강은 북한강·남한강의 상류로, 발원지인 태백의 검룡소(儉龍沼)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이곳에서 만납니다. 검룡소란 한강의 실제 발원지로 공식 지정된 태백산 금대봉 기슭의 샘을 말합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처음엔 이 강이 한강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주변을 걸으면서 물살이 꽤 강하다는 걸 느끼고 나니 오히려 실감이 났습니다.
아우라지에는 정선아리랑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집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사랑에 빠진 두 남녀가 뗏목을 타고 오가다 홍수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이 안타까운 사연이 아리랑의 소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강 양쪽에 세워진 아우라지 총각 상과 아우라지 처녀 상, 그리고 두 사람이 만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은 오작교(烏鵲橋)가 그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오작교 위에서 바라보는 초승달 조형물은 실제로 꽤 거대합니다. 제가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예상보다 훨씬 압도적인 크기였습니다.
역 바로 앞에는 어름치 카페가 있습니다. 어름치(Hemibarbus mylodon)란 이 지역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 민물고기로, 건물 외형을 이 물고기의 형태로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내부는 도서관과 카페로 운영 중입니다. 아우라지 강변 둘레길은 잘 정비되어 있어서 걷기에 불편함이 없었고, 출렁다리를 건너면 여송정(旅松亭)이라는 정자까지 이어집니다.
정선 시내, 공연과 음식으로 하루를 채우는 법
아우라지에서 정선 시내로 이동할 때 택시를 써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여량 버스 정류장에서 정선 공영버스인 와와 버스를 타면 20분 만에 시내까지 갑니다. 와와 버스(Wawa Bus)란 정선군에서 운영하는 공영버스로, 작년부터 전 노선 무료로 전환되었습니다. 단, 교통카드 태그는 해야 합니다(출처: 정선군청). 34번 버스 기준 1시간에 1대꼴로 운행하니 시간표 확인이 필수입니다.
정선 시내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아리랑 센터였습니다. 아리랑 센터는 아리랑 박물관, 공연장, 아라리촌이 한 자리에 모인 정선의 문화 거점 시설입니다. 이곳의 대표 공연은 두 가지입니다. '아리아라리'는 매월 2와 7이 들어가는 정선 5일장 날 오후 2시에, '뗏꾼'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상설 공연합니다. 두 공연 모두 관람료는 5,000원이지만 현장에서 동액 상품권으로 환급해 줘서 사실상 무료입니다. 예매는 정선아리랑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는데, 제가 관람한 토요일 공연은 공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일찍 예매해 두는 게 맞습니다.
참고로 정선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된 문화유산입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특정 공동체의 전통·지식·기술 등이 세대를 통해 전승되며 인류 전체의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유산으로 유네스코가 공식 인정한 것을 말합니다. 박물관 2층에서는 지역별 아리랑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청음 공간이 있어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정선아리랑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시장 상인에게 직접 물어봐서 현지 주민들이 즐겨 찾는 식당을 골랐습니다. 이곳에서 처음 먹어본 곤드레 막걸리는 일반 막걸리보다 구수한 풍미가 더 깊었습니다. 콧등치기 국수(Kotheung-chigi noodle)도 빼놓을 수 없는데, 콧등치기 국수란 면발을 들어 올릴 때 굵고 탄력 있는 메밀 면이 콧등을 때릴 만큼 세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매콤하면서 톡 쏘는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메밀전병, 배추전을 한꺼번에 즐기려면 모둠 부침을 주문하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정선아리랑열차 예매는 어디서 하나요?
A. 코레일 앱이나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출발지를 '제천'으로 설정해 검색하면 됩니다. 종점인 아우라지역까지 요금은 10,200원이고, 자유석은 별도 예매 없이 현장에서 이용 가능합니다. 자전거 전용석은 반드시 사전 예매해야 거치대를 쓸 수 있습니다.
Q. 아우라지에서 정선 시내까지 버스로 갈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아우라지역 앞 주례 마을 장터에서 50m 직진하면 여량 버스 정류장이 나옵니다. 34번 와와 버스를 타면 20분 만에 정선 시내에 닿고, 요금은 무료입니다. 다만 1시간에 1대 운행이라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정선 아리랑 센터 공연, 예약 없이 당일에 가도 되나요?
A. 일반적으로 당일 현장 구매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방문한 토요일 공연은 전 좌석이 매진 상태였습니다. 정선아리랑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5,000원에 미리 예매하면 현장에서 동액 상품권으로 환급해 주므로 사실상 무료입니다. 사전 예매를 강하게 권합니다.
Q. 정선아리랑열차 자유석과 지정석 차이는 뭔가요?
A. 지정석은 코레일 앱에서 좌석 번호를 지정해 예매하는 방식이고, 자유석은 1호차와 4호차 끝 칸에 2개씩 있는 좌석으로 예매 없이 먼저 앉는 사람이 이용합니다. 자유석은 창문과 평행하게 배치되어 경치 감상에 유리하고 인기가 높습니다. 제 경우엔 자유석을 이용했는데, 목 받침까지 있어서 편했습니다.
Q. 정선 레일바이크는 어디서 예약하나요?
A. 아우라지역에서 출발하는 정선 레일바이크는 인기가 많아 인터넷 사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레일바이크를 타려면 풍경열차를 타고 약 9km 떨어진 구절리역으로 이동한 뒤, 레일바이크를 타고 아우라지역으로 복귀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현장 당일 예약은 매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
이번에 정선아리랑열차 관련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저도 기차 여행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자동차 여행이 편한 건 사실이지만, 이동하는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없다는 점에서는 기차가 분명히 다릅니다. 파노라마 창으로 산과 강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가는 2시간 30분은, 차 안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과는 체감이 다를 것 같습니다.
정선은 자연경관뿐 아니라 아리랑이라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층층이 쌓인 곳이었습니다. 와와 버스 무료 운행 덕분에 자동차 없이도 아우라지에서 정선 시내까지 이동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는 점도 긍정적이었습니다. 다음번에는 가족들과 자전거를 챙겨서, 2호차 자전거 전용석에 앉아 이 열차를 한 번 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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