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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엔 그냥 예쁜 수목원이겠거니 했습니다. 꽃 구경하고 산책하다 오는 평범한 나들이 코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경북 군위에 있는 사유원을 알게 된 뒤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25년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되고,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곳에 이름을 올린 곳이라고 하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식 정원과 세계적 건축물이 만나는 공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목원이라고 하면 보통 조성된 화단과 이름표 붙은 나무들을 줄지어 걷는 장소라고 생각했는데, 사유원은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태창철강 유재성 회장이 2006년부터 대구 팔공산 자락 약 20만 평을 매입해 20년에 걸쳐 직접 가꾼 사립수목원(私立樹木園)입니다. 여기서 사립수목원이란 국가나 지자체가 아닌 개인이나 법인이 조성하고 운영하는 수목원을 의미하는데, 공립 수목원과 달리 설립자의 철학과 미감이 공간 전체에 그대로 녹아드는 게 특징입니다.

제가 가장 관심 있게 살펴본 곳은 한국식 정원인 유원(遊園)이었습니다. 설립자가 직접 전국에서 소나무와 돌을 모아 조성한 공간으로, 그냥 보기에도 정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사야정이라는 정자 아래로는 계곡 물소리가 흐르고, 멀리 팔공산 비로봉이 보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 이런 배치 자체가 풍수지리적 감각을 담은 전통 조경(傳統 造景) 방식입니다. 전통 조경이란 자연 지형과 식생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대신 있는 그대로 활용하면서 사람이 머물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한국 고유의 정원 설계 방식을 말합니다.

사유원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다른 축은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로 시자(Álvaro Siza)의 작품들입니다. 알바로 시자는 포르투갈 출신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1992년에 수상한 거장입니다. 프리츠커상이란 매년 살아있는 건축가 중 건축 예술에 지속적으로 탁월한 기여를 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국제 건축상으로, 수상자 자체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힌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작품인 소요헌과 내심낙원이 사유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이곳을 단순한 수목원과 구분 짓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소요헌은 콘크리트 구조물이지만 곳곳에 자연 채광(自然採光)을 끌어들이는 슬릿 창을 두어 내부를 걷는 동안 빛과 그림자가 계속 바뀝니다. 자연 채광이란 인공 조명 없이 햇빛을 건물 안으로 직접 유입시키는 설계 기법인데, 시자의 건축에서 이 기법은 단순한 조명 수단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와 감정을 바꾸는 핵심 장치로 쓰입니다. 저처럼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걷다 보면 이 공간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사유원 주요 공간 한눈에 보기

  • 유원(遊園): 설립자가 직접 조성한 한국 전통 정원. 사야정 정자와 팔공산 조망
  • 소요헌: 알바로 시자 설계. 콘크리트 미로형 구조물, 생명과 순환을 주제로 함
  • 내심낙원: 알바로 시자 설계. 흰색 예배당, 자연 채광으로 십자가를 비추는 구조
  • 와사(臥舍): 물길을 따라 배치된 녹슨 철판 건물. 연못과 자연을 액자처럼 담음
  • 첨단(瞻壇): 물탱크를 개조한 전망 탑. 사유원 전체와 팔공산 360도 조망 가능
  • 소대(巢臺): 알바로 시자의 요청으로 지어진 20m 높이 전망대. 새둥지라는 뜻
요약: 사유원은 전통 조경 방식의 한국식 정원과 프리츠커상 수상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복합 문화 정원입니다.

 

수백 년 된 모과나무와 현실적인 방문 조건

제 경험상, 오래된 나무 한 그루 앞에서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수백 년의 세월이 쌓인 나무는 그냥 식물이 아니라 일종의 역사 유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유원에는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이라는 이름의 모과나무 숲이 있는데, 이 나무들은 밀반출될 위기에 처했던 수백 년 된 노거수(老巨樹)들을 설립자가 직접 하나씩 매입해 이곳으로 옮겨 키운 것이라고 합니다. 노거수란 수령이 오래되고 수형이 크고 웅장한 나무를 이르는 말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호 대상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각 나무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는데, 수목을 개체 단위로 관리하는 방식은 웬만한 공립 수목원에서도 보기 힘든 수준의 정성입니다.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등록 수목원은 2023년 기준 총 90여 곳에 달하지만(출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개인이 20년 이상 직접 가꾼 사립수목원으로서 이 정도 규모와 예술적 완성도를 갖춘 곳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이 부분이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실제로 의미 있는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실적인 부분을 짚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말 성인 기준 입장료가 69,000원입니다.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엔 꽤 부담스러운 금액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사유원 측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예약제로 운영하며, 현장 잔여석이 있을 경우 당일 구매도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출처: 사유원 공식 홈페이지). 입장료가 비싸기 때문에 오히려 방문객 수가 제한되어 조용하고 여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논리가 전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붐비지 않는 수목원, 그 자체가 하나의 가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전체 코스를 다 돌면 약 4시간이 걸립니다. 어린아이와 함께 방문하기에는 솔직히 쉽지 않은 일정입니다. 제 경우엔 어린 아이를 동반한 나들이를 자주 다니다 보니 이 부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산책로 자체는 전반적으로 평탄한 편이고, 중간중간 쉼터와 청양대 같은 휴게 공간도 있다고 하니 페이스 조절을 잘 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화장실 시설이 각 구역마다 독립된 개인실로 운영되고 내부에 세면대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은 이런 긴 코스에서 정말 중요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문 전에 함께 고려해볼 만한 곳이 두 곳 있습니다. 사유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충의공 엄흥도의 묘는 영화 '왕과 나는 남자'로 알려진 역사 인물의 유적으로, 차에서 내려 5분이면 닿을 수 있습니다. 사유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화본역은 1936년에 지어진 간이역으로, 현재는 폐역이지만 전국에서 가장 예쁜 간이역으로 선정된 적이 있을 만큼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곳입니다. 거대한 급수탑 내부까지 개방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라면 오히려 이쪽이 더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약: 수백 년 된 노거수를 직접 보존하는 수준의 관리 철학은 인상적이지만, 주말 69,000원의 입장료와 4시간 소요 시간은 방문 전 충분히 고려해야 할 현실적인 조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유원 입장료가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A. 주말 성인 기준 69,000원이라는 금액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같은 생각이었는데, 20년간 개인이 정성 들여 조성한 공간에 세계적 건축가의 작품까지 포함된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 수목원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가족 4인이 방문하면 상당한 금액이 되는 만큼, 단풍 절정기처럼 계절 특수를 노려 한 번의 방문을 제대로 즐기는 전략이 현실적으로 맞는다고 봅니다.

 

Q. 어린아이 데리고 가도 괜찮을까요?

A. 전체 코스는 약 4시간으로 어린아이와 함께하기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산책로는 대체로 평탄하고 중간중간 쉼터가 있어서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걷는 시간이 긴 편이라 미리 코스를 조율해서 짧게 돌아보는 방식을 택하는 게 낫습니다. 근처 화본역은 오히려 아이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어서, 두 곳을 조합하면 하루 코스로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Q. 사유원 예약 안 하고 당일에 가도 되나요?

A. 기본적으로 예약제로 운영하지만, 현장 잔여석이 있을 경우 당일 매표도 가능합니다. 다만 주말이나 단풍 성수기에는 현장 잔여석이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훨씬 안전한 선택입니다. 특히 가을에는 전국적으로 방문 수요가 높아지는 시기라 더욱 그렇습니다.

 

Q. 알바로 시자가 누구인지,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을까요?

A. 알바로 시자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포르투갈 건축가입니다. 건축을 전혀 모르는 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건축 전공자가 아닌데, 소요헌이나 명정 같은 공간은 설명을 몰라도 걷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미리 아는 것보다 아무 지식 없이 들어가서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편이 더 강렬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

사유원은 수목원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하기에는 아쉬운 곳입니다. 전통 조경, 사립수목원, 세계적 건축, 노거수 보전이 한 공간 안에서 20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국내에 비교할 만한 곳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입장료가 부담스럽다는 시각도 있고, 시설 대비 합리적이라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한 번쯤은 충분히 경험해볼 가치가 있는 공간이라는 쪽에 더 가까이 서 있습니다.

가을 단풍이 물드는 시기에 엄흥도의 묘와 화본역까지 묶어 하루 코스로 계획해 보시길 권합니다. 방문 전 사유원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공연 스케줄도 함께 챙겨두면 더 알찬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HKO8tseqmo